문구점에 갔다. 얼굴을 지우는 지우개는 없더라. 연필을 지우는 지우개도 있고 색연필을 지우는 지우개도 있고 볼펜 글씨를 지우는 지우개도 있는데 너를 지우는 지우개는 없더라. 너와 내가 함께 한 사랑 여름날 뙤약볕에서 뜨겁던 사랑의 끝자락에서 그 아픈 흔적을 말끔히 지우는 지우개는 어디에도 없더라. 철없는 바람이 외롭다며 주인 잃은 내 마음을 파고드는 혼자만의 가을 산책길에서 바람을 지우듯이 너를 지운다. 너와 내가 함께 한 사랑 그 아픈 흔적을 지운다. 너를 지우며 너에게 묻는다. 진짜 우리가 했던 게 사랑이라는 거 맞니? 사랑을 지우며 사랑에게 묻는다. 사랑을 지우는 지우개는 왜 이리도 아프고 쓰라린 거니?